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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준진영살
댓글 0건 조회 176회 작성일 26-08-25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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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광이 처음 영시를 발표한 ‘노스파크대학신문’ 1면(1929년 10월 25일). /‘흑구 한세광의 영시들’(한명수, 부르크 2024) 1929년 9월 한세광이 입학한 노스파크대학은 시카고시 북부 변두리에 있었다. 신학대학을 포함해 학생 수가 1000명쯤 되는, 스웨덴(瑞典)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세운 작은 대학이었다. 그는 조선인 실업가 김경(金慶)이 운영하는 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었다. 식당업으로 시카고에서 크게 일어선 그는 동포들의 사업 진출을 도와주고 흥사단을 후원하면서 한승곤 목사와 돈독한 관계의 개척 이민자였다. 청년시인에게 학비 면제 스칼라십을 얻어준 것도 김경이었다. 그런데 한세광은 스웨덴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때로부터 무려 마흔여섯 해가 흘러간 1975년 새해, 포항에서 예순여섯 살을 맞는 한흑구는 ‘신동아’ 1975년 2월호에 발표한 회고의 글 ‘순정의 학우 알바’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그때 나는 스웨덴에 대한 지식은 별로 갖고 있지 않았다. 스웨덴은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있는 삼국의 하나라는 것과 북구의 문화국의 하나요 노벨상을 주는 나라라는 것쯤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학교에 통학하면서부터 곧 알 수 있었던 것은 스웨덴 사람들의 이름들―즉 성(姓)들이 슨(Son)으로 끝맺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학장의 성도 Olson이었고, 교수와 학생들의 성도 Johnson, Peterson, Nelson, Jacobson, Anderson, Dowson, Harrison 등등 거의가 슨(Son)자 돌림이었다.” 해가 바뀌었다. 1930년 5월, 시카고에도 봄이 무르익었다. 한세광은 대학 도서관에 앉아 공부에 몰두하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캠퍼스 잔디 위에는 수를 놓은 듯이 하얀 클로버꽃과 노란 민들레꽃이 피어 있고, 초록빛 수양버들도 단오를 맞은 처녀들의 머리 모양으로 줄줄이 늘어져 한들거리고 있었다. 문득 그는 노트에다 고향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미국의 봄도 고향의 봄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고, 클로버, 민들레, 수양버들도 우리가 다니던 숭실중학의 캠퍼스에서 보던 것과 다름이 없네.’ 그러나 외로움을 숨길 수 없었다. ‘시카고에는 110여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나는 아직 혼자서 살고있는 것 같은 외로움을 참기가 어렵다네.’  여기까지 쓰고 창밖으로 눈길을 돌린 그는 멀리 다운타운 번화가에 우뚝우뚝 솟은 빌딩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금성 고향, 집, 부모, 형제, 친구···. 이런 생각이 줄을 지었다. “미스터 한!” 한세광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미스터 한은 한국에서 온 학생이라는 것을 학보를 통해서 알았지만 저의 이름은 모르지요? 전 루스 알바라고 해요.” 유난히 큰 두 눈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루스 알바(Ruth Alva)의 하얀 손을 그는 얼떨결에 잡았다. 스웨덴의 피를 받아 황금색 머리카락과 하늘색 푸른 눈동자를 소유한 미모 여학생이 먼저 자기소개를 내놨다. 아버지는 미시간주 어떤 작은 촌에서 목사 일을 보고 있으며, 어머니는 음악학교를 나와서 노래를 잘한다고 했다. <그 후부터 나는 자주 도서관에서 알바를 만났고, 알바는 내가 밤을 새워가면서 쓴 영문 시를 모두 고쳐주었다. 그중 잘 되었다고 생각되는 두 편을 문학형식론을 가르치는 넬슨 교수에게 보였더니 그는 곧 학보에 실어주었다. 나의 이름과 내가 쓴 시가 영문으로 인쇄된 것을 처음으로 바라볼 때에 나는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것보다도 알바는 물론이고, 학보 문예부의 여학생 기자들까지도 나를 큰 시인인 것 같이 대우하고 또한 격려하였다. 나는 용기를 얻어서 밤을 새우면서 영미 시인들의 시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학보에 수십 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이렇게 해서 일 년이 지나고 다음 해 새 학기가 되어서도 가끔 학보에 시를 발표하였다. 그러던 중 어떤 날 학장님이 나를 부르신다고 넬슨 교수가 일러주어서 학장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한 군은 시인이셔···.” 그는 진지한 태도로 이렇게 한마디하고 한참 나를 바라다보고는 “앞으로 더욱 많은 시를 쓰게. 우리 학교의 이름으로 출판을 해줄 터이니.” 하고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실 것 같은 자세를 하다가 그냥 한번 웃어 보였다.> 예순여섯 살의 한흑구가 ‘순정의 학우 알바’에서 털어놓은 루스 알바와 영시(英詩) 창작에 대한 추억의 한 토막이다. 루스 알바도 한세광도 ‘순정(純情)’은 틀림없겠고 ‘학우(學友)’도 틀림없겠으되, 어찌 ‘사랑’이 빠질 수 있었겠는가. 그해 여름방학에 루스 알바는 그에게 미시간의 자기 집으로 놀러 가자고 졸라댔다. 하지만 그는 따를 수 없었다. 고학의 노동을 버리지 못하는 처지였다. 1930년 3월 7일 노스파크대학에는 대학이 후원하는 시인클럽 ‘페가수스(The Pegasus)가 창립되었다 골드몽오리지널 . 회원은 32명이었다. ‘노스파크대학신문’에 꾸준히 영시를 발표해온 한세광은 비평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는다. 루스 알바도 회원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그해 3월 14일에 나온 ‘노스파크대학신문’에도 실려 있다. 아마도 대학신문은 주간으로 발간됐을 것이다. 1933년 노스파크대학 시인클럽 ‘페가수스’ 동인지 창간호 표지. /‘흑구 한세광의 영시들’(한명수, 부르크 2024) '페가수스‘ 창간호의 판권면에 나오는 ’SAY, K. HANH‘이라는 한세광의 영문 성명. /‘‘흑구 한세광의 영시들’(한명수, 부르크 2024) 1930년 경성 우편국 앞. /네이버 블로그 1920년대 시카고. /네이버 블로그 한세광이 노스파크대학 시인구락부에 뽑혔다고 알려주는 1930년 5월 15일자 신한민보 기사. /아시아 제공 그날로부터 세 해쯤 지난 1933년 세모, 귀국을 준비하는 한세광은 문학적 인생을 통틀어 최초로 ‘신한민보’에 ‘흑구’라는 필명을 표명하는 글을 통해 미국에 와서 “시 200편과 영시 100편을 창작했다”고 알리게 되는데, 2024년에는 한흑구 연구자인 한명수 시인이 ‘노스파크대학신문’과 동인지 ‘페가수스’ 1집, 2집에 실린 한세광의 영시와 영역(英譯) 시 15편을 발굴해 후학들 앞에 내놓는다. 한명수 편저 ‘흑구 한세광의 영시들’(2024, 부르크)에 수록돼 있다. 여기서는 그의 영역 시 한 편과 영시 한 편을 불러낸다. 한세광(Say K. Hanh)은 1929년 11월 13일 ‘노스파크대학신문’에 조선의 시조 두 편을 영역해 소개했다. 한 편은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남긴 유일한 시조인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홀로 오노매라’이고, 또 한 편은 기생 신분으로 조선시대의 손꼽히는 여류시인 계량의 시조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라가락 하노매’이다. 허균(1569-1618), 이귀(1557-1633), 유희경(1545-1636) 등과 사귀었으며, 특히 유희경과 살뜰한 관계를 맺어 ‘떠난 유희경’의 소식이 끊긴 뒤로도 절개를 지켰다는 계량의 애절한 사랑노래를 한흑구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Spendthrift peach blossoms were raining down, 모바일 바다 스팀 게임 When after weeping embraces my lover departed. Now in the Autumn wind the leaves drift, And I wonder if he, too, is thinking Thousands of miles away of the same lonesome dream Which alone lingers, when all else is gone." ‘My Eternal Home, Korea’(나의 영원한 고향)는 동인지 ‘페가수스’에 실린 한세광의 영시 4편 중 한 편으로, 다음은 3연과 4연이다. "Thou are the “Land of Morning Calm” My beloved, eternal home, Korea! But now, thou hearest the wailing from the farm, And also from every youthful heart of Korea. And yet thy bright lamps thou bear, Still burning and brightening the night; Dawning of the East is drawing near, Chillness and darkness will be gone with the night." 우리글로 번역하면 맛이 떨어지는데, 이러하다. <너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나의 사랑하는, 영원한 고향, 조선이여/하지만 지금, 너는 농가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조선의 젊은 가슴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그래도 그대가 품은 밝은 등불은/여전히 타오르며 밤을 밝히는구나./동쪽 하늘은 밝아오고,/추위와 어둠은 밤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동쪽 하늘은 밝아오고 추위와 어둠은 사라질 것’이라는 한세광, 그는 조국독립을 향한 뜨거운 의지를 품고 있는 ‘조선의 울부짖는 젊은 가슴’으로 ‘조선심(朝鮮心)’의 영시를 쓰고 있었다. 조선심, 이것은 그에게 한글 시 창작과 영시 창작의 모순적 장애물을 뚫고 나가는 돌파구이기도 했다. 두 언어로 시를 창작하는 시인은 참으로 난감한 언어적 격차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그러하다. 1936년 ‘신인문학’에 발표한 ‘재미 6년간 추억 편편’에서 한흑구는 그 체험을 이렇게 고백한다. ‘영문으로 창작을 힘쓰는 동안 조선문 창작이 퇴래할 것임을 깨달았다. 실로 이것은 나의 머리를 괴롭히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나는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의 작가가 돼야 하니 영문공부도 조선인적 태도로써 하겠다.’  /이대환 작가 조금도 다름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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