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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문제의 제기
2026년 7월 6일 광주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2월 11일 광주대표도서관 건설 현장 구조물 붕괴로 노동자 4명이 사망한 사건에 관하여 시공사·하청업체·감리단의 핵심 책임자 11명과 법인 4곳을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하였다. 조사 결과 철골 기둥-보 접합부의 용접 강도는 설계 기준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였고, 여기에 불법 재하도급, 무자격 인력 투입, 무리한 공기 단축이 겹쳐 있었다. 검찰은 "기본적 주의의무를 이행하였다면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기소 명단에 발주처의 책임자는 없다. 발주처 소속 공무원 4명이 입건되어 후속 수사 중이라고는 하나, 광주광역시 학동 참사(2021), 화정아이파크 붕괴(2022)에 이은 세 번째 참사에서도 첫 기소의 대상은 발주자를 제외한 나머지 공사관계자들이다. 주목할 것은 언론 보도로 드러난 정황이다. 사고 약 8개월 전 지붕층 하중이 5배 이상 과소 계산되었다는 구조안전성 보고서가 감리자의 경고와 함께 발주처 종합건설본부장에게까지 전달되었음에도 가설벤트는 철거되었고 아무일 없다는 듯 공사는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본건은 발주처가 위험을 '몰랐던 사고'가 아니라 위험 신호가 결재선을 따라 '보고되었던 사건'이 된다. 발주자란 어떤 존재이며 공사에 대하여 어떤 책임과 의무를 지는가라는 근본 질문이 제기되어야 하는 지。이다.
Ⅱ. 독일법상 발주자의 협력의무
독일 건설도급계약은 민법(BGB)과 건설도급규정(VOB)이 규율하며, 그 핵심에는 장기계약이라는 본질에서 도출되는 협력의무(Kooperationspflicht) 법리가 있다. BGB 제642조는 일의 완성에 도급인의 협력이 필요한 경우 도급인이 이를 지체하여 채권자지체에 빠지면 수급인에게 상당한 보상청구권을 인정하고, 제643조는 협력을 최고하였음에도 응답이 없으면 계약이 해소된 것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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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설은 이 협력을 진정한 의무가 아닌 책무(Obliegenheit)로 파악하나, 건설도급의 특수성상 약정이나 신의칙에 의해 진정한 의무로 격상될 수 있고, 그 해태의 효과 - 보상청구권, 계약 해소, 위험과 책임의 이전 - 는 사실상 의무 위반에 준하여 작동한다. 2018년 시행된 BGB 제650a조 이하의 건설계약(Bauvertrag) 규정은 발주자의 지시권(제650b조)에 상응하는 보수조정청구권(제650c조)을 수급인에게 보장하여 권한과 부담의 균형을 제도화하였다.
특히 주목할 것은 VOB/B의 위험통지(Bedenkenanzeige) 법리다. 수급인이 시공 방식이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통지하면(제4조 제3항) 수급인은 하자담보책임에서 면제되고(제13조 제3항), 통지에도 불구하고 원안 시공을 고수한 발주자에게 위험과 책임이 이전된다. 또한 발주자 위험영역의 사정으로 공사가 방해되면 공기는 연장되고(제6조), 공사 지연·설계 변경에 따른 추가 비용은 발주자가 부담한다. 요컨대 독일 법리에서 발주자는 '주문하고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공사의 성공과 안전을 '함께 책임지는 계약 당사자'이다.
Ⅲ. 영국 CDM과의 교차。
영국 CDM(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 Regulations)은 발주자 의무를 규정의 첫머리(Part 2, Regulation 4)에 두어, 발주자에게 충분한 시간과 자원의 확보, 안전 정보의 사전 제공, 설계자·시공자가 안전관리 역량을 발휘할 환경의 제공의무를 부여한다. 2007년 개정으로 발주자 책임의 대리인 위임이 금지되었고 2015년 개정으로 발주자 책임은 더욱 강화되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OECD 경제 10대국 중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은 영국 0.24, 독일 0.29로 최저 수준인 반면 한국은 1.59로 최고이며 영국과의 격차는 6.6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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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주자에게 공사의 조건(시간·비용·정보)을 통제하는 권한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지운다는 .에서 독일과 영국은 궤를 같이한다.
Ⅳ. 광주 사건의 재해석
협력의무 법리로 광주 사건을 재해석하면 발주자 책임론은 추정에서 논증 차원으로 올라선다. 첫째, 위험 통지에 대한 응답 책임이다. 하중 계산 오류 보고서가 본부장에게 전달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순간 발주자에게는 시공을 중지시키고 안전성을 재검증할 책임이 발생하며, 이를 무시한 데서 비롯된 결과책임은 발주자에게 이전된다. 둘째, 공기 재산정 책임이다. 원청의 자금난으로 공사가 3개월 중단되고 일정이 4개월 가량 지연되었음에도 원 준공 시.과 지체상금 조항은 유지한 채 일정 준수만 강조되었다면, 이는 영미법상 '의제적 공기단축 지시(constructive acceleration)' - 정당한 공기 연장을 승인하지 않은 채 원 일정 준수를 요구하는 행위 자체를 공기 단축 강요로 평가하는 법리 - 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 당초 준공 목표가 2026년 6월 지방선거 직전이었다는 。도 간과할 수 없다. 셋째, 발주자가 스스로 48m 장스팬 무동바리 특허 공법을 선택하였다면 그에 상응하는 구조 검증 체계를 마련할 책임이 있음에도, 시공 단계의 책임감리에만 맡겨 두었다. 넷째, 희생자 중 1명은 발주처가 직접 계약한 관급자재 납품업체 소속으로, 노동청이 발주처를 원청으로 보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검토하는 이유다. 이러하다면 발주기관이 '실질적 지배·운영·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항변이 설 자리는 좁아 보인다.
Ⅴ. 현행법의 한계
한국 민법의 도급 규정은 발주자의 협력에 침묵하고, 판례상 형성된 신의칙상 협력의무도 독일과 같은 명확한 법적 효과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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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제67조가 적정 비용·기간의 계상 의무를 두었으나 제재는 과태료 1,000만 원이 전부이고, 제69조의 공기단축 금지는 형벌 부과 조항이기는 하지만 적극적 단축만을 금지할 뿐 지연된 일정을 연장하지 않는 부작위 형태의 압박은 포섭하지 못하며 무엇보다 벌금 1,000만 원은 억지력이 전무하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은 '실질적 지배·운영·관리'라는 해석론으로 발주자를 사실상 면책시키고 있다.
Ⅵ. 입법론
첫째, 발주자의 협력의무를 법적 효과와 함께 명문화하고, 특히 시공사나 감리가 구조 안전 위험을 통지한 경우 발주자에게 공사 중지·안전성 재검증 의무를 부과하며 그 해태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을 발주자에게 귀속시켜야 한다. 둘째, 공사 중단·시공 주체 변경 등 중대한 사정변경 시 준공 일정의 재산정을 의무화하고, 의제적 공기단축에 해당하는 경우 지체상금 청구를 배제하여야 한다. 셋째, 통지된 위험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거나 부적정한 공기·공사비를 설정한 발주자를 중대재해처벌법상 독립된 책임 주체로 규정하여야 한다. 넷째, 적정 공사비·공사기간의 객관적 기준과 독립적 검증 절차를 확립하고, 다섯째, 고위험 공법 채택 시 구조 전문가의 상시 검증을 의무화하며 감리가 발주자의 일정 압박으로부터 독립하여 공사를 중지시킬 수 있는 권한과 신분 보장을 마련하여야 한다.
Ⅶ. 결어
이 글은 형사재판을 앞둔 피고인들의 책임을 예단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건설행위 간 발생하는 사고 피해자뿐 아니라 사고 후에 조사받고 법정에 서게 되는 피고인들 역시 또 다른 의미의 피해자이므로, 건설공사에서 '피해자'를 줄이는 길은 발주자 책임을 재구성 하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제는 발주처였던 광주광역시도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출범으로 사라졌지만 그 책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계약, 특히 '건설도급계약'의 완성은 양 당사자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단순한 원칙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독일 민법이 한 세기를 훌쩍 넘겨 다듬어 온 명확한 원칙이고, 광주의 네 희생자가 우리에게 남긴 입법 과제이다. 처벌 확대가 아닌 책임 구조의 재설계가 절실히 필요한 시。이다.
김진기 변호사(법무법인 한중)·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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